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구 해외파 선수들 (문단 편집) === 박찬호와 황금의 90년대 세대 === || 3 || 4 || 5 || 6 || 7 || 8 || 9 || 10 || 11 || 12 || || '''박찬호''' || 최경환 || 최창양 || '''김선우''' || '''조진호''' || 서재환 || '''서재응''' || 정석 || 김재영 || '''백차승''' || || 13 || 14 || 15 || 16 || 17 || 18 || 19 || 20 || 21 || 22 || || '''봉중근''' || '''최희섭''' || '''김병현''' || '''이상훈'''(NPB출신) || 송승준 || 권윤민 || 오철희 || 김병일 || 서정민 || 정영진 || 그리고 1994년, [[로스앤젤레스 다저스]]에 입단한 [[박찬호]]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서 성공시대를 열었다. 첫번째 타자 진출자는 최경환이었다. 12월에는 [[최창양]]도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. 1997~1998년 동안에 데뷔한 선수 중에서는 상당한 수가 메이저리그 경기장을 밟았다. 대표적으로 서재응, 김선우, 백차승[* 백차승은 병역 기피 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법적인 처벌만 받지 않을 뿐 사실상 범죄자 신세가 되어버렸다.], 조진호, 봉중근 등이 있으며 이외 마이너리그에만 머문 선수로는 정석(당시 최고 수준이었다고 평가되었으나 진출 전의 부상으로 경기에 거의 뛰지 못했다.), 서재환(서재응의 형. 한국 10라운드 지명 후 동생과 함께 미국행), 김재영(고교졸업 후 실험적 진출을 했다. 금방 돌아와 한국 대학 입학) 등이 있다. 1999년에는 해외 진출 붐이 최고에 달했는데, 한국 역대 최고 마무리 투수로 꼽히는 김병현과 추신수 이전 유일한 메이저리그 타자였던 최희섭이 이 해 미국땅을 밟았다. 주니치의 이상훈 역시 이 해에 미국으로 건너와 FA 계약을 맺었으며 이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FA 계약이다. 이외 1999년 데뷔해 마이너리그에 머문 선수는 [[송승준]][* AAA에서 감독이 선발 경기 후 승격 소식을 전하려고 했으나 해당 경기에서 손 부상을 당하며 김선우가 대신 승격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.] , [[권윤민]], 김병일(2차 1라운드급으로 예상되었으나 미국에서는 거의 경기를 뛰지 못했다.), 오철희(추신수와 동시대의 최고 타자 유망주), 서정민, 정영진이 있다. 설명에서도 볼 수 있듯 99년 경 부터 상당한 수준의 유망주가 별 결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이 꽤 늘어났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